인간내면의 박제사(剝製師) - EDWARD KIENHOLZ(1927-1994) (1)

필자는 수년 전 국내 어느 미술관에서 에드워드
키엔홀츠 부부의 전시를 본 적이 있다.
어두침침한 전시장과 전체를 압도하는 무거운
기운과 군데군데 번쩍거리던 화려한 색깔조명들의 대비를 기억한다.
무엇보다도 작품과 작품 사이를 걸어다닐 때 풍겨
나오던 그 퀴퀴한 냄새는 결코 잊을 수가 없다.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모았다는 국적을 초월한
정크로 만들어진 작품들은 과연 인류보편의 삶을
표현하기에는 안성맞춤인 듯했다.
특히 삶의 고통과 고뇌 그리고 죽음, 분노와 관련된 인간의 암울한 상황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에는 정크 이상의 안료가 있으랴.
세련됨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아무렇지도 않게 조합된 듯한 작품들이 쏟아내는 그 거친 떠들썩함에서 나는 오히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언어의 어눌함을 느꼈었다.

그의 생애
에드워드 키엔홀츠는 1927년 Washington의 Fairfield 에서 태어났다. 자라서 목장경영을 하거나 목동이 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농장생활에서 그는 기계를 만지는
기술과 목수로서의 훈련을 습득하게 된다.
그 후 동부 워싱턴 교육대학에서 수학하고 짧게 스포케인에 있는 Whitworth College 에서 수학하지만 공식적인 미술수업을 받을 기회는 전혀 없었다.
그는 벌이를 위해서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게 된다.
정신병원의 간호사로, 댄스밴드의 매니저로 그리고 중고차 딜러로 일했으며 연회주선 담당자, 데코레이터와 진공청소기 세일즈맨으로 일했다.
이 다양한 직업편력은 그 후 그의 작업에 다양한 형태로 반영되어 나타나게 된다.
1953년에 그는 로스엔젤레스로 이사를 오게되며 1954년 로스엔젤레스의 첫 릴리프 제작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작품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1956년까지 제작되던 릴리프 작업은 서서히 더욱 뚜렷한 3차원 작업으로의 진행을 암시하는 것이었다고 볼 수 있다.
작품활동의 초기부터 그러했던 키엔홀츠 특유의 거칠고 야만적인 어법은 그의 작품을 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이거나 간에 엄청난 충격을 가하는 것이어서 지속적인 센세이션을 몰고 다니게 된다.
1972년 사진 저널리스트인 그의 다섯 번째 부인인 Nancy Reddin Kienholz 를 만나고 동료로서 조력자로서 공동작업을 시작하게 되면서 독일과 미국의 스튜디오에서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게 된다.
그리고 1994년 10월, 그는 아이다호의 Hope에서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한다.

키엔홀츠가 초기에서부터 말기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내뱉은 직설적인 이야기체의 작품들에 대한 설명을 하기 전에 그의 작업경향을 단적으로 말해주는 미술비평가 Robert Hughes 글을 인용하면서 본 장을 마친다.

" .....포스트모던한 미국에서 정치적 성향을 강하게 띠던 예술이 창백하다 못해 지나치게 개념화된 묽은 죽이었다면 키엔홀츠의 작업은 그 모든 방식에 있어서 붉은 고기였다."

- 다음 장에서는 키엔홀츠가 세상을 향해 던진 그 붉은 고기의 맛을 한 점 한 점 음미하도록 하겠습니다.....


[글쓴이] 큐레이터 한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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