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의 역사에서 정크예술에 관한 일관적이고도 풍부한 내용을 찾아내는 것은 힘든 일이다. '정크'라는 용어가 가지는 운명처럼 정크아트 또한 서양미술의 화려한 물결 속에 파묻혀 마치 없어도 되는 기계부속품처럼 내던져져있는 존재는 아닐런지.
따라서 정크아트의 시작과 과정과 끝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우리는 현대의 정크아티스트들이 쓰레기더미에서 그들만의 사랑스런 보물재료들을 찾아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술의 역사 속에서 정크아트의 단서가 되고 역사가 될만한 재료?들을 찾아 모으는 수고를 먼저 시작해야할 것 같다.

서양미술사에서 정크아티스트로 직접적으로 거론되는 예술가는 없다. 다만 버려진 물건들을 가지고 일관되게 작업을 했던 작가들만이 있을 뿐이며 정크아트적인 경향들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그들 중에서도 필자는 우선 쿠르트 슈비터즈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그의 작품은 미술사의 화보에서도 언뜻 알 수 있듯이 제법 쓰레기다운 재료들로 그의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창조해 나간 작가이다.


(1) 쿠르트 슈비터즈 Kurt Schwitters (1887-1948)

쿠르트 슈비터즈는 일반적으로 20세기 콜라쥬의 위대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콜라쥬가 근본적으로 아이러니한 기법인 것과 마찬가지로 슈비터즈의 삶 또한 패러독스와 수수께끼로 특징 지워진다. 유복한 집안의 독자로 독일의 하노버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시절을 외톨박이로 지냈고 간질병에 시달렸으며 내성적이었고 불안정했다.
1916년 독일 표현주의 예술가들과의 접촉이 그에게 자신의 스타일을 개발시키는데 대한 더 많은 자신감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가장 인상적인

작업들은 그 즈음까지는 그의 동시대인의 모방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한다.

그의 예술적 경향들의 변천을 시기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09년-1914년 - Academic Painting
1914년-1917년 - Impressionism
1917년 - Expressionism
1917년-1918년 - Abstraction
1918년 -1948년 - Merz

여기에서 그의 일련의 꼴라쥬 작업이라고 볼 수 있는 'Merz'는 가장 특징적이면서도 중요한 작업이라 볼 수가 있다.


▶ Das Sternenbild (1920)
▶ Merz 133
▶ Merzbuild 29A. Picture with Flywheel, 1920 und 1940 Assemblage, oil, diverse material on cardboard, wood and paper 85,8 x 106,8 cm, 93 x 113,5 x 17 cm (wooden frame)

슈비터즈는 그 당시의 혁명적인 베를린 다다이스트들의 활동에 많은 자극을 받았다. (일반적으로는 슈비터즈가 베를린 다다의 정치적인 성향에 반대하여 그것을 거부하였다고 하는 설도 있다.) 그러나 슈비터즈가 그의 빈약한 아카데미적 기법을 버리도록 처음으로 설득한 것은 콜라쥬의 개척가라고 할 수 있는 한스 아르프였다. 슈비터즈의 첫 콜라쥬 작품이라고 알려진 'Hansi'는 아르프에 대한 강렬한 추억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와의 접촉 이 후 슈비터즈는 그가 '메르쯔(Merz)'라고 명명한 것을 포함한 버려진 조각으로 만든 앗상블라쥬 작업을 시작했다. 그 후 그는 그의 모든 작업을 '메르쯔'라고 부르게 된다.

여기에 슈비터즈의 '메르쯔'와 관련된 글이 있다. 이 글은 그가 버려진 물건들을 가지고 하는 작업을 하게된 경위와 배경, 그가 가지고 있었던 철학을 설명해 주기에 충분함이 있다.

...전란 중, 나의 사고에는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아카데미에서 배웠던 것은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쓸만한 새로운 것은 아직 정착되지 않고 있었으며 한편으로 내 주위에는 나로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일에 대한 끔찍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급기야 그 영광스러운 혁명이 일어났다.(나는 이런 종류의 혁명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한 혁명을 위해서 인간은 충분히 성숙해야만 한다. 그것은 마치 익지 않은 과일들을 바람이 나무에서 떨구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단한 손실일 수 있다.)

그러나 어쨌든 전쟁이라 불리우는 사기극은 끝났으며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하던 일을 그만두었다. 고난은 시작되었다. 그러나 정말로 사고의 변화가 시작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나는 자유를 느꼈으며 인간에게 정면으로 기쁨의 함성을 지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황폐한 국토와 어려운 경제여건을 고려해 나는 내 주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을 이용했다. 폐품을 가지고도 창작은 충분히 가능한 것이었다. 나는 그것들을 서로 붙이고 못박으며 이 물건들을 <메르쯔 Merz>라 명명했다. 그것은 전쟁의 종료를 기리기 위한 마음의 기도였다. 승리는 다시 평화를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모든 것은 파괴되었고, 그 파편으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만 했다. ....-W.Schmalenbach,『Schwitters』,1967 *장-뤽 다발, 추상미술의 역사, 미진사
Relief In The Blue Square

그리고 그는 1923년부터 1932년까지 '메르쯔'라는 비정기간행물인 잡지를 발행하게 되는데 거기에서 그는 '메르쯔'라는 작품명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나는 원칙적으로 아무 재료나 사용 가능한 나의 새로운 작업방식을 '메르쯔'라 명명하고 있었다. 그것은 '코메르쯔(Kommerz,상업)'의 두 번째 음절이다. 이것은 나의 그림 <메르쯔>의 추상적 형태들 속에서 발견한 단어로서 광고문에서 오려낸 것이었다. ...... 결국 나는 낡은 차량 이름판, 벌레 먹은 나무, 보관소의 번호표, 철사, 자전거 부속품, 단추 등 다락방이나 쓰레기더미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것들도 물감 못지 않게 사용 가능한 재료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사회적 의도라면 의도일 수 있겠고 예술적 견지에서 볼 때는 개인적 즐거움이랄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궁극적으로 얻어낸 것은 하나의 새로운 작업방식이었다. ...-『메르쯔』20호, 1927 *장-뤽 다발, 추상미술의 역사, 미진사

그는 1918년에서부터 1923년까지 메르쯔 작업을 연속적으로 창조하게 된다. 이것은 20세기미술에서 그가 가장 크게 공헌한 작업으로 지금은 평가되고 있다. 이 작품들은 추상과 리얼리즘, 미적인 것과 쓰레기, 예술과 삶이라는 민감한 병치로부터 끌어내어져 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의 직관적 생명력은 메르쯔의 특징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 후 그는 13년 동안(1923-36) 메르쯔바우(Merzbau)라고 하는 특별한 구조와 관계되는 작업을 하게된다.

[글쓴이] 큐레이터 한은영

<계속>


쿠르트 슈비터즈 2편 [Merzbau - 삶과 예술의 거대한 일기장 ]
쿠르트 슈비터즈 1편 [20C 꼴라쥬의 위대한 작가]
EDWARD KIENHOLZ 1편[인간내면의 박제사(剝製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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